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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독학 정보

기타를 글로 배웠어요 8

켄지 0 2119

  홍대는 한국 밴드 음악의 인큐베이터라고 누가 그랬더라. 컨티넨탈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나는 사업을 조금 하다가 곧바로 접고 일자리를 얻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홍대다. 그때는 단출하게 컴퓨터, 베이스 기타, 옷가지 정도만 들고 상경을 했다. 중요한 세 가지 물품 중 하나가 베이스 기타였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시절 나에게 베이스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펜더 재즈 스탠다드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비싼 물건이었고, 가장 가지고 싶어 했던 동시에 생계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베이스를 치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어떻게 살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베이스 치기를 작정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분명 홍대라는 이점을 살려 밴드를 한다거나 학원을 다닌다거나 레슨을 받거나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돈을 주고 악기를 배우거나 밴드를 해볼까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도 큰 두려움이었고 그럴 돈이 있으면 생계에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 같은 내향성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대에 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전혀 살릴 수가 없었다. 

  내 베이스 인생은 교회에서 시작해서 교회에서 끝났다. 교회에는 실제 잘 나가는 록 밴드를 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생각해 보니 컨티넨탈에서도 악기팀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공자였다. 덕분에 나는 전공생들과 합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무됐다. 그들은 앨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연주들을 내 눈 앞에서 했고 거기에 내 베이스를 슬며시 올려볼 수 있었다. "오빠, 여기서는 이렇게 쳐주시면 안 돼요?" "형, 여기는 리듬 이렇게 가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이런 피드백은 하나하나 공부가 됐고 다양한 피드백을 반영하여 연주를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나는 베이스로 16비트 리듬 치는 것을 좋아했다. 드럼이 평범하게 8비트를 치면 나는 그 위에 16비트 리듬으로 현란하게 연주를 했다. 그러면 노래가 갑자기 16비트 곡으로 변한다. 베이스 기타는 핵심 리듬을 드럼의 킥과 맞추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편하게 멜로디 연주를 넣는 것도 충분히 허용이 됐는데 나는 특유의 쓸데 없는 리듬을 멜로디와 함께 어설프게 집어넣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어설픈지도 모르고 템포가 흔들리는 줄도 몰랐다. 합주는 적당히 묻어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피드백이 오기 전에는 줄곧 내 맘대로 쳐댔다. 하지만 속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미심쩍음도 생겨났다. 카피를 하고 연주를 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너무 과하게 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고치려 해도 의도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독학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심도 있는 연습은 하다 말다를 반복하며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었다. 어떠한 계기, 이를테면 무안을 당한다거나 실력의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의 연습 의지가 불타오르는 경우는 없었다. 가끔 음악을 듣다가 너무 멋있는 곡을 만나면 쳐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지만 그런 곡은 대부분 카피를 할 수조차 없이 어려웠고 설사 카피를 했다 해도 곡의 느낌과는 전혀 달라서 이상하게 들렸다. 더 잘해보려는 상향심이 있지만 그것이 늘 작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나는 내 실력을 향상시킬 방도가 없었다. 아마 성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이후로 실력이 늘었던 것은 단지 지판에 대한 반응성 정도였을 뿐, 실제 실력의 기반이 되는 터치라든지 코드톤을 활용한 연주나 펜타토닉을 기반으로 하는 멜로디나 솔로 연주는 할 수 없었다. 아니, 뭘 알아야 하든지 말든지 하지.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어느 날 느닷없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했던 짧은 생각이 "나는 기타 실력이 좋아지기 전까지는 기타를 안 치겠어!"라는 파괴적인 행동이었다. 기타를 미친 듯이 계속 치고 파고 들어야 실력이 늘어도 늘 판인데 안 치겠다니, 이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다행히도 그 생각은 아주 빠르게 사라졌고 다시 기타를 열심히 치게 되기는 했지만, 지식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돈 주고 배운다는 선택지는 언제나 배제되어 있던 상태라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독학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독학으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선명하다. 독학은 갈팡질팡하며 난이도를 스스로 점검하기 힘들어서 체계적으로 실력을 만들어가기 어렵다. 그동안 갈고닦은 노하우라는 것도 협소하여 자칫 독선으로 빠지기도 한다. 스스로 체계를 정립하고 구체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독학은 하다가 지지부진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독학에 대한 얘기다. 특히 나처럼 이거 조금 했다가 저거 조금 했다가 하면서 의미와 과정을 뒤늦게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구체화는 더 멀어진다.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사소한 팁을 그제서야 "와, 이거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좋아했었다. 남들 다 알고 있던 건데 정말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실력이 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 너무 멀리 돌아간다. 통기타 레슨을 받던 분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저보다 30년 빠르신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간을 아끼는 것만큼 유익한 것은 없다. 

  독학에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명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 나의 경우 그것은 음악의 이론과 좋은 톤을 만드는 자세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두 가지가 작동하지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연주의 맥락을 놓치거나 연주의 퀄리티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저 연주자는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고민을 해봤자 나에게는 해결책이 없었다. 그 때 빨리 레슨을 받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어찌 됐건 실력이라는 것은 지지부진하지만 쌓이기는 했다. 악기를 놓지만 않으면 1년에 한 두 가지의 실력이 향상은 되어갔다. 할 줄 아는 게 몇 개 없다 보니 한 가지를 배우면 마르고 닳도록 그 테크닉만 연주했다. 이리저리 써먹어보고 하면서 점점 꼼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실력을 늘리고 싶어지면 이때부터 꼼수를 적극적으로 확장한다. 베이스에서는 '릭'이라는 게 있다. 릭은 짤막한 멜로디의 구성인데 연주 중간중간 집어넣으면 꽤나 그럴듯한 연주처럼 들리게 해준다. 의미와 맥락도 모르고 나는 일단 카피를 시작했다. 노래에서 베이스가 멜로디를 치는 게 들리기만 하면 외울 때까지 듣고 카피를 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계속 할 뿐이었다. 이렇게 하면 실력이 좀 더 나아지는 걸까.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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